“모두가 꿈꾸는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보다 한 사람에게 더 쓸모있는 기업이 되자는 게 목표입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옳다고 믿는 일’을 꿋꿋이 해나가면 모두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고 봅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성기광 닷 대표(31·사진)를 만난 건 지난달 27일 밤 8시. 제품 개발 회의 중이던 성 대표의 얼굴은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지난 한 해 동안 공들여온 세계 최초 ‘점자 안내 키오스크’ 배치가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닷은 시각장애인용 점자기기를 전문으로 개발·판매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점자기기의 원리는커녕 점자 읽는 법조차 몰랐던 성 대표와 동료 창업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저렴한 점자기기’ 개발을 목표로 도전한 결과 관련 특허만 30개 이상 보유하게 됐다. ‘장애의 장벽이 없는 세상’을 목표로 기술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는 그를 만나봤다.

“성경 1권이 점자로 23권, 바꾸고 싶었죠”

성 대표와 김주윤 공동대표는 2015년 닷을 세웠다. 창업 첫해인 2015년 세계 최초의 점자 스마트워치 ‘닷 워치’를 선보였다. 지난해엔 기존 제품에 비해 가격이 5분의 1 수준인 점자 전자책 리더기 ‘닷 미니’도 출시했다.

성 대표가 처음부터 사회적 기업에 관심을 보인 것은 아니다. 중학교 때부터 우정을 쌓아온 성 대표와 김 대표는 한국을 떠나 각각 미국 유타대와 워싱턴대에 진학했다. 둘은 미국에서 만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열풍을 타고 2014년 화물차를 예약할 수 있는 모바일 앱(응용프로그램) 사업을 시도했다가 쓴맛을 봤다. 하지만 곧바로 새로운 사업 기회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시애틀의 한 교회에서 거대한 점자 성경을 읽느라 끙끙대는 한 시각장애인의 모습을 보면서다.

성 대표는 “비장애인에게 한 권이면 충분한 성경이 점자책이 되면 23권짜리로 변한다”며 “글자를 점자로 변환해주는 기기도 5000달러가 넘는 고가 상품밖에 없어 김 대표와 함께 저렴한 점자기기를 개발하자고 뜻을 모았다”고 했다.

2014년 성 대표는 김 대표와 함께 학업을 중단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점자 시계 개발에 들어갔다. 기존 기기를 뜯어보며 원리를 익히는 데만 7개월이 걸렸다. 공들여 개발한 기술을 모조리 폐기해야 할 때도 있었다. 성 대표는 “처음에 1년 걸려 개발한 점자 구동 모듈은 시각장애인이 점자 읽는 방식을 잘못 이해해 다시 2년을 투자해 새로 제작해야 했다”며 “닷 워치의 정식 판매까지 여러 번 피드백을 받아 제품을 수차례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닷 워치는 3년여의 제품 개발과 1년가량의 시험 판매 기간을 거친 끝에 2018년 6월 한국을 비롯해 미국, 중동, 유럽, 러시아 등의 시장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국내 소비자 구매가격은 35만원이지만 정부 지원을 받으면 6만원에 살 수 있다. 성 대표는 지난해 내놓은 전자책 기기 닷 미니에 이어 점자 태블릿PC 제품도 이같이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는 “자신의 동생이 시각장애인인데 닷 워치 덕분에 태어나 처음으로 스스로 시계를 볼 수 있었다는 감사편지를 받았을 때 창업 당시의 의지가 지켜진 것 같아 무척 기뻤다”고 회상했다.

카타르월드컵에 점자 키오스크 배치할 것

닷이 올해 집중하는 사업은 능동형 점자기술을 적용한 ‘점자 정보 시스템’이다. 키오스크에서 단순하게 점자로 정보만 제공하는 게 아니라 지도와 길안내 같은 복잡한 시각적 정보를 전달하는 게 목표다. 올초 부산과 서울에 시험 배치한 뒤 정식으로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오는 10월 열리는 ‘두바이 엑스포 2020’과 2022년 카타르월드컵에서도 관련 기술을 선보일 방침이다.

성 대표는 “키오스크에 점자기술을 적용한 사례는 닷이 세계 최초”라며 “2022년 월드컵을 앞두고 카타르 정부와도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했다.

시각장애인용 점자기기 시장은 좁은 ‘니치마켓’이다. 쿠팡과 우아한형제들처럼 수천억원의 투자를 받은 동료 기업인들이 부럽지는 않을까. 성 대표는 “부러울 때가 없다면 거짓말”이라며 웃었다. 하지만 그는 “‘옳은 가치’에 도전하면 상업적 성공도 함께 추구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며 “정부도 ‘소셜벤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한 만큼 다양한 사회적 기업이 나왔으면 한다”고 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